고객상담센터
항상 친절히 안내하겠습니다.
010-5035-7567
상담시간 09:00 - 18:00판서공파
자료실 > 판서공파
숭의재(崇義齊)

판서공 향사 음력 10월 초 정일(丁日)
판서공파 대종회 기
판서공(判書公) 휘 밀양(密陽)
공의 호[號]는 낙촌(駱村)이고 휘가 밀양(密陽)이니, 고려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전법판서[典法判書]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를 역임하였고 밀산군(密山君)과 봉순대부(奉順大夫)로 봉 하였다. 여주군 대신면 천남리에 숭의재(崇義齊)를 서기 1958년에 전국에 산재한 종친[宗親]들이 표성[表誠]하여 숭의재를 건립 하였다.또한 뒤에 밀산군[密山君]에 단비를 설단[設壇]하고 음력 10월 초 정일(丁日)에 시향을 지내며 있다. 휘 밀양은 보문각 대제학 밀성군 윤문(允文)의 6형제 중 맡아들로 포은 정 몽주 (圃隱 鄭 夢珠)와 목은 이색(牧隱 李穡)등과 도의로서 교류하였으며,공의 증조는 성진(成進)이니 정용장군(精勇將軍)이였는데 명나라 황제는 문하평리 승(門下評理 丞)을 증직 하였고 충렬왕의 명에 따라 군사를 거느려 일본을 정벌하러 갔으나 싸움에서 돌아오지 아니 하였다.(고려사에 나타남) 할아버지는 원(原)이니 판 전교시사(判典校侍事)이며 아버지는 보문각 대제학(寶問閣 大提學)공 휘 윤문(允文)이시고 어머니는 해양군부인(海陽郡夫人)이고 광산 김씨이며 첨의정승 쾌헌 문정공 태현(僉議政承 快軒 文正公 台鉉)의 여(女)로 여중군자행실이 있었다. 배(配)는 문화류씨이니 첨의정승 찬성시녕군 장경공 돈(僉議政承 贊成始寧君 章敬公 墩)의 여로 공의 훌륭한 배필이었다. 2남 4녀(二男四女)를 나으니 맏이는 경의(敬義)이며 중낭장(中郎將)으로 시호가 충민공 이고 다음은 경인(敬仁)이니 전서 벼슬을 하였다.
밀산군(密山君) 휘 밀양(密陽)의 七言律詩(칠언율시)
赴牧隱席上 扶輿夜歸
久病誰期更합簪 夢中相待酒盃深
諸公雅量推工部 仲子高才拜翰林
詩句迭聯雲藹藹 絃歌交奏夜藹藹
扶跫扶召扶輿返 牧老風流盖古今
목은(牧隱) 이색(李穡)선생을 모시고 갔다가 밤길에 돌아오면서
오랫동안 병석에 계시었는데 어찌 뵈올줄 알았으랴 꿈속에 서로 만나 술잔 들고 깊은정 나누노라 여러분의 아량으로 추천되였고 중자께선 재질 높아 한림에 올랐도다.
읊으신 좋은 글은 구름 일 듯 왕성하고 거문고와 노래소리 밤 깊음을 몰랐구나 초대받고 달려가서 모시고 놀다보니 목은선생 높은 풍류 이세상에 제일이요.
충민공(忠敏公) 휘 경의(敬義)
공의 휘는 경무(敬茂)이며 일명 경의(敬義)로 밀산군(密山君)의 아들이며 충정왕조(고려:忠定王朝)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고 공민왕(恭愍王)때 병부참정[兵部參政]으로 익재공신[翊載功臣]이라 삼중대광(三重大匡)과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제수 받았으며 또한 이후 충민공(忠敏公)으로 시호(諡號)를 받았으며 공민왕이 공적(功蹟)을 가상히 여겨 어필(御筆)로 이름을 경의(敬義)라고 지어 주시었다. 충혜왕과 충정왕의 사이에 군소들이 정치함으로 나라가 점점 어려움에 처하고 충정왕이 또 황음 무도하거늘 공이 충성스러운 곧은 말로써 바로 끊고 충혜왕 동모제인 공민왕으로 바꾸어 임금을 세워 나라의 명맥을 붙잡으니 의리가 햇빛보다 더 밝으며 지절 곧기가 서릿발을 능가하니 조정에서는 궁중의 범이라 칭했다. 공이 드디어 퇴임하여 여주의 강가에 돌아와 남은 여생을 보내니 문하시중을 증직하고 시호를 충민공이라 내렸다. 배위는 파평윤씨로 대언안적의 따님이시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으니 장남은 득중(得中)이라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이요 차남은 흥중이니 중랑장이요 사위는 조곤이니 평양 사람으로 삼사사경이다. 배[配]파평윤씨 부(父)안적(安摘)이며 첨의정승(僉議政丞) 문현공(文顯公) 윤보(尹珤)의 손녀이다. 묘는 여주군 북내면 현암리 수촌 박씨포 이다.